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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heb soth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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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믿을 때 두 가지를 고려한다. 하나는 직감으로,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다른 하나는 주관적 경험으로,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배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 확실한 실증적 이론 중 하나는 확증 편향이다. 이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뒷받침할 사례만 찾는 경향을 말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 한다.

사람들은 질문하고 탐구한다.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하면 다른 답변을 찾게 된다.

과학계에는 가면 증후군이라는 현상이 있다. 이는 어떤 주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고 느끼는 현상이다. 자신을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더닝-크루거 효과도 있다. 이는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이 잘 안다고 믿고 자신감을 갖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신의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온라인에는 과학적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많다. 공식과 도표가 있어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연구자들의 의견과 동등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사고의 방식이며, 모르는 것을 증거를 통해 파헤치는 과정이다. 의도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것을 반증하려는 더 많은 탐구자들이 나타난다. 이를 제도적 반증이라고도 한다.

반증주의는 가설이나 이론이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지속적으로 검증되고, 반증된 가설이나 이론이 더 우수한 가설이나 이론으로 대체되면서 과학이 발전한다는 관점을 의미한다. 반증주의자들은 가설이 반증 가능성이 높을수록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반증 가능하다'는 것은 그 가설이 틀렸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가설이 틀렸다면 어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그것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상의 모든 이론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다루는 대부분의 논쟁은 사실 논쟁거리도 아니다.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거나 이미 반박이 끝난 이야기들이다.


어떤 이론을 믿으려면 음모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설에서 제시하는 증거가 틀렸다고 주장하려면 그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조작되었다면 그것은 음모론이다. 그런데 그 증거를 조작할 필요가 있을까?

음모론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게 보인다.


음모론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된다. '기존의 지식은 믿을 수 없어', '정부도 못 믿겠고, 과학자들도 못 믿겠어.' 이런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음모론에는 한계가 없다. 오직 자신만을 신뢰한다.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더 복잡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많은 증거가 축적되어 있고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음모론자들은 그 증거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반대되는 사실이나 사건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불신의 눈덩이는 커진다.

문제의 원인이 지능 부족이라고 볼 수 없다. 교육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잘못된 교육의 결과일 수 있다. 특정 교육 방식에 의해 기존 지식을 꾸준히 의심하라고 배운 결과일 수 있다. 그렇게 물이 더럽혀진다.


아무리 근거를 제시해도 믿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건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런 논쟁은 의미가 없다.

사실 문제는 음모론자들이 아니다. 문제는 음모론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있다. 음모론자들을 깔보지 않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창피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마치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아이가 어느 부분에서 막혀 있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을 망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단순히 미쳤다고 말할 수 없다. 미쳤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희생양일 뿐이다. 음모론과 상관없이 어느 분야에서든 '미쳤다'는 소리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미쳤다'는 의미는 광범위하다. 음모론자들의 최악의 상황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고, 직장과 친구들, 부모 형제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진화론 거부자, 평면 지구론자, 백신 접종 거부자 등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사회의 지성이 변형되고 타락한다. 천부적인 탐구심과 규범을 거부하는 태도는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된다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을 버려선 안 된다. 그들을 대면하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이 지속되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비판적 사고를 할 줄 모르고, 전문 지식을 평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선동이 쉬워진다.


이런 논쟁은 전쟁에 비유할 수 있다.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깔본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얘기하는 도중에도 반격을 준비하게 된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공동 탐구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함께 탐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중간까지 나와주길 바라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은 한 발짝 나오는 것도 힘들 때가 많다.


불가능한 믿음을 가질수록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더 거대한 대안 현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바꾸지 않고 현실을 바꾸려 한다. 결국,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된다. 주류에서 멀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면서, 이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믿음의 투쟁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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