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정의
2017-11-03 일 연희동 레이져에서 어노잉브레인 프로젝트 진행이 있었다. 토론을 겸한 강연형식의 오픈모임 이었다 표현하는 것이 적당 했다.
이런 강연은 관람자로 참여하는데 있어서도 주제별 할당된 시간이 매우 짧기에, 보통은 60분의 제한된 시점내 몇가지 주어와 논제가 던져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 모임 또한 특별히 다른것은 없었다. 한계와 현실, 그리고 불가능성에 대한 끝장 토론이라는 홍보맨트가 끌려 들어 보기로 했을 뿐이다.
카이스트 이병주 교수의 "탈정보화 시대의 공학-예술" 은, 흥미롭다 표현하기엔 역시 부족한 시간 내에서 부족했다. 관람객은 적었지만, 몇 안되는 관람객 전체가 미술인들이었기에 그들의 기술/이론적 영역으로의 감성적 접근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분위기 였다.
이병주 교수의 접근은 순수했고 미술로 향한 선량한 감성이 느껴졌다. 그 시기를 거친 나에겐 쉽고 익숙한 모습이었다. 시기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그 시기'
두번째, 강기석 작가의 "자유의지를 철폐하는 잔혹에 관해서", 발표자 였던 작가가 밝힌 주제가 이게 맞는지 적확치 않다.
강기석 작가의 프레젠테이션 한시간의 결론은 이렇다. 미술인들은 창의적 감성으로 작품을 표현하고, 스스로들 그것을 텍스트로 정의 내리려 무던히 애를 쓴다.
사적 감성과 이야기로 표현되는 작업들이 있다.
그리고 이론적 오마주를 묘사하거나, 아카데믹한 기계적 패턴이 반복되는 작업들이 있다.
강기석 작가의 관객들을 통한 한시간은, 왜 미술이 사회속 대중에게 소통되지 못하는지를 압축해 설명해 주는 좋은 예 였다.
미술에서도 전략은 존재한다. 체제를 경험해 본 이들일수록 전략적이다.
KRISS 서준호 교수의 "양자" 강연 시작 전 다음 약속을 위해 이동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