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공구와 가치에 대한 생각
창고 정리중에 오래된 공구들을 발견하고 동네 당근마켓에 올렸습니다.
각각 1만원.
블랙앤 데커 직쏘
블랙엔 데커 로터리툴
블랙엔 데커 전기톱
SARA 422J 에어타카
블랙엔 데커 사각 대패
모두 작동되는 상태들입니다.
이 공구들은 모두 최대 2시간도 사용하지 않고 18년 정도 창고에 묻혀 있었습니다.
공구들 각각 추억도 있지만, 공구를 좋아하고 손에 익은 공구들은 남의 손에 넘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 공구들 에게는 애정이 없습니다.
당근 마켓에 이 공구들을 올리고 나서 메세지 수십건이 도착 했습니다.
1만원짜리 중고 공구를 구매 하겠다며, 자신이 구매해야 하는 온갖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보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 공구들은 작동 가능한 상태 입니다. 그러나 공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공구들은 1만원의 가치도 없음을 모를 수 없습니다.
톱이지만 잘 잘리지 않고, 툴이지만 툴이 해야 할 역할을 잘 못하고, 대패지만 센딩 시간이 손으로 하는 것 보다 더 오래 걸리고 진동과 소음은 덤이고, 타카지만 6만원 이하로 신형 새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데 저런 오래된 제품을 구매할 필요가 있을지?
저런 공구들은 가능성을 파괴하고, 상상을 파괴 합니다.
당근마켓 앱은 가끔씩 중고 제품들을 아이쇼핑 합니다.
대부분 공구들을 바라 보는데, 중고 공구들이 올라오는 모습은 가격이 비정상 입니다. 작동은 되겠지만 녹슬고 오래된 제품이 새제품 가격과 30%도 차이 나지 않는 고가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차라리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브랜드 새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작업 품질도 더 좋을 겁니다.
1만원, 저렴한 비용일 겁니다. 그러나 그정도 가치는 없습니다.
저런 공구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저 공구들을 실사용 하기 위해 구매한다 생각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1.5만원, 2만원에라도 되팔기 위해서 1만원 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버리면서 까지 편도 40분을 걸어와 구매해 다시 걸어서 돌아가는 행동을 합니다.
과자 봉지 속 3,000원짜리 스티커 한장을 구매하기 위해 1시간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3,000원을 4,000원으로 되팔면서 1,000원의 마진만을 생각 합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한 자원 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시간의 가치는 다릅니다.
현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가치는 당장의 자본과 금전적 이익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제 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작품 철학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제 만난 작가도 사소한 텍스트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철학적 일관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작업 과정에서는 먹다 남은 음식물 통에 물감을 섞고, 저급한 재료로 인한 변색이나 완성도 저하에는 무관심 합니다. 작가들이 철학을 거론할 때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철학과 실제 행위 간의 괴리가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며, 작업 과정에 실질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를 좋게 말하면 절약일 수 있겠으나, 실상은 작업에 지출을 꺼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작가들이 우선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작품이나 작업실이 아닌 자동차와 집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제적 상황이 악화될 때, 이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절약 방법은 작업과 관련된 지출, 특히 작업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처분하거나 집, 먹거리와 같은 생계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예술을 위해 살기보다 현실을 위해 예술을 소비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전문성은 말로만 증명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허상이나 망상이 아닌, 실체와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허상은 비용이 들지 않기에 얼마든지 거짓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 중고 공구들에 대한 가치는 제게 무(無)와 같습니다. 공구를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아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가치는 본질적으로 무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필요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쉽게 본질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변질이 보장된 싸구려 재료나 먹던 배달음식 통을 사용한다면, 필요는 충족될지 몰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는 완전히 손상될 것입니다. 가치는 단순한 필요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철학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은 결코 진정성을 담을 수 없습니다.